영화의 건축적 구조(서사, 해석, 담론)
케익 하나가 있다고 생각해보자. 우리가 스크린이나 모니터를 통해 보는 영화는 케익의 윗면과 같다. 우리는 케익위를 덮고 있는 생크림과 과일들, 예쁜 장식들을 보면서 그 케익이 어떤지 웬만큼 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케익의 진면모는 케익을 잘라봐야 드러난다. 장식만 요란한지 아니면 속까지 알찬지, 케익이 어떤 빵과 재료로 층층이 구성되어 있는지 말이다. 가령 얉은 크레이프를 층층이 쌓아올린 크레이프 케이크는 필히 단면을 살펴야만 케이크에 대해 알 수 있다.
때문에 영화를 2차원의 면이 아니라 3차원의 공간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감각 할 수 있는 것 너머의 의미, 맥락, 감정을 살피는 것은 표면적인 행위가 아니라 공간적인 활동이기 때문이다. 케익처럼 영화는 일종의 건축물과 같다. 관객이 감각적으로 인지할 수 있는 영화가 창문 너머로 보이는 방이라면 영화가 내포하고 있는 공간의 전체 크기는 커다란 건축물과 같다. 그러니 영화를 본다는 것이 방 안을 살피는 일이라면 영화를 읽는다는 건 건축물의 구조를 가늠해보는 것과 같다.
영화라는 건축물의 구조를 서사 공간, 해석 공간, 담론 공간의 3종류로 분류해보자. 서사 공간은 캐릭터들이 이야기를 전개하는 공간이다. 해석 공간은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에 대해, 내포작가와 내포관객이 해석을 전개하는 공간이다. 담론 공간은 실제작가와 실제관객이 영화와 결부된 다양한 담론들, 영화를 둘러싼 콘텍스트, 논점, 관객의 감정을 얘기할 수 있는 공간이다. 서사 공간은 “이런 이야기구나”라고 말한다면 해석 공간에서는 “이렇게도 볼 수 있겠구나”라고 말할테다. 담론 공간에서는 “영화를 통해 이런 얘기도 할 수 있겠다”, “이렇게 느낄 수 있구나” 라고 말할 것이다.
서사 공간, 해석 공간, 담론 공간의 세부 요소들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 서사공간(내러티브):
-플롯(플롯의 구조 등), 캐릭터
● 해석공간(미학):
-촬영(프레이밍, 카메라 워크, 심도, 시점 쇼트, 카메라 앵글, 쇼트의 크기, 필터, 포커스, 조명 등),
-편집(커트, 디졸브, 페이드, 연속편집_쇼트/리버스 쇼트, 매치컷, 180도 법칙 등, 불연속편집_점프컷 등, 교차편집,
편집 속도/리듬, 몽타주 편집 등)
-미장센(세트, 소품, 의상, 메이크업, 색감 등),
-사운드(내재음향, 외재음향, 폴리 사운드, 평행 사운드/대위법적 사운드 등),
-연기
● 담론공간(영화의 콘텍스트, 관객의 생각과 감정):
-작가주의, 상호텍스트성, 이데올로기, 장르, 인문학적/사회학적 맥락 등
해석 공간은 내포작가와 내포관객이 영화를 해석하는 공간이다. ‘내포작가’는 ‘실제작가’와는 별개로 영화상에 내포된 작가로서, 내포작가의 해석이란, 영화에 내포된 요소들에서 끌어낼 수 있는 의미들을 일컫는다. 내포관객 역시 실제 관객이 아니라 영화에 내포된 관객으로서, 영화에 내포된 것들을 내포작가의 의도대로 충실히 해석하여 영화를 정석대로 이해하는 관객을 말한다. 그런데 내포작가와 내포관객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내포작가가 딱 꼬집어 어떤 걸 얘기하는 게 아니라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거나 해석의 여지를 남겨두는 경우에는 내포관객의 능동적인 역할이 요구된다.
담론 공간에서 해석 공간, 서사 공간으로 이동할수록, 즉 영화 외적인 것보다는 영화속 캐릭터와 서사에 집중할수록 영화에 대한 ‘동일시’가 강화된다. 캐릭터의 감정을 내 것처럼 느끼고 영화가 말하는 바에 동조하게 된다. 반대로 서사 공간에서 해석공간, 담론 공간으로 나아갈수록 영화에 ‘거리두기’를 하게 된다. 영화를 둘러싼 맥락과 논점에 비추어 영화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영화의 서사는 영화의 미학적 형식과 결부되어 구성되기 때문에 관객이 서사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영화의 형식적 요소들을 분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해석 공간은 내포 작가가 말하는 바를 내포 관객이 해석하는 공간이다. 앞서 말했듯 내포작가가 던지는 질문이나 내포작가의 관점에서 비어 있는 공간들을, 내포 관객이 능동적, 창조적인 해석으로 채울 수 있다. 그런데 능동적, 창조적인 해석을 하는 주체는 누굴까? 바로 실제 관객이다. 내포작가와 내포관객은 실제 관객에 의해 구체화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실제 관객의 활동은 제한적이다. 실제 관객은 이때 영화 내적인(영화 내부와 외부를 구분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문제지만)요소를 통해서만 얘기해야 한다. 가령 해석 공간에 식탁이 놓여있다면 관객은 그곳이 부엌임을 추론하며 냉장고나 싱크대도 있을거라고 말할 수 있다. 혹은 식탁 위에 널브러진 그릇과 술병을 통해 파티가 있었을 거라고 짐작할 수 있다. 나아가 집의 구조가 어떨 것이며 어떤 사람들이 파티에 다녀갔을지, 분위기가 어땠을지, 그게 영화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추론할 수 있다. 그것들은 영화 내적인 것을 통해 끌어낼 수 있는 해석이다. 하지만 그 공간에 화분이 어울릴 것 같다고 화분을 가져다 놓으면 안된다. 그건 영화 내적인 것과 연관성이 없는 자의적이고 주관적인 해석과 같기 때문이다.
반대로 담론 공간에서 실제 관객은 영화 외적인 오브제들도 놓아둘 수 있다. 화분을 놓아두며 (그것이 영화의 서사나 형식같은 영화 내적인 얘기는 아니지만)이런 주제의 이야기들을 영화와 결부지어 얘기해 보자고 할 수 있다. 가령 영화 <조커>(2019)를 보고 “정당한 ‘시민 불복종’과 부정한 ‘폭동’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라는 주제를 얘기해 볼 수 있다. 담론 공간에서 실제 관객은 그렇게 ‘영화 리터러시’(영화를 매개로 비판적으로 읽고 표현하기)활동을 하거나 자신의 판단 기준에 따라 영화를 비평할 수 있다. 담론 공간에서 실제 작가와 결부된 담론들은 영화의 제작과 관련된 이야기들, 영화의 감독이나 제작진과 관련된 얘기들, 상호텍스트, 즉 영화 속에 포함된 책이나 예술작품, 실존 인물과 관련된 얘기들이다.
그런데 이 공간들은 역동적으로 상호작용한다. 가령 영화를 보면서 이야기를 파악하다가 해석이 필요한 장면을 만나면 나름대로 해석을 하게 될 것이다. 그 해석이 이야기의 방향을 바꾸기도 한다. 혹은 영화가 다루는 소재에 대한 배경지식이나 인문, 사회학적인 관점이 해석에 큰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영화를 처음 볼 때는 해석 공간에서 서사 공간으로 이동하는 일이 많다. 하지만 영화를 두번째 볼 때는 전체적인 서사를 파악하고 있으니 처음에 발견하지 못했던 것들을 포착할 수 있고 이는 새로운 해석으로 이어질 수 있다. 담론과 해석, 서사는 칸막이로 꽉 막혀 있는 게 아니라 모호한 경계선을 사이에 둔 채 서로 오고 가며 순환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다음 글에서는 존 포드 감독의 영화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1962)를 통해 서사, 해석, 담론의 세 공간의 상호작용이 실제로 어떻게 이뤄지는지 살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