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큐레이션

이야기론으로 보는 진보와 보수의 대립

별그물 2021. 5. 13. 00:48

이번에는 보수와 진보가 대립하는 이유라는 주제를, 영화의 이야기론에 비추어 이야기 해보고자 합니다. 내가 어떤 영화를 좋아하는지를  통해 나의 세계관과 가치관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그 이전에 어떤 영화가 가진 이야기의 구조가 어떤 세계관을 내포하고 있는지를 이번 글을 통해 살펴보려 합니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나 한국 사회는 보수와 진보, 소위 이념갈등과 진영갈등이 매우 심하죠. 보수는 말그대로 변화 보다는 전통적인 것들을 지키려는 쪽이고 평등 보다는 자유의 가치를 중시합니다. 진보는 말그대로 변화를 추구하고 자유보다는 평등의 가치를 우선시합니다.  보수는 진보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고 얘기하고 진보는 오히려 보수가 나라를 망치고 있다고 말하죠. 보수와 진보의 극심한 갈등은 거의 서로를 천사와 악마로 인식하는 수준이죠. 동일한 사람이 한쪽 관점에서는 천사였는데 다른 쪽에서는 악마로 보이는 겁니다. 상대주의 철학에 의하면 동일한 사람이나 사물도 관점에 따라 달리 보이는 게 맞긴 합니다.

 

그런데 한국사회의 이념갈등은 그런 형이상학으론 설명이 잘 안 됩니다. 동일한 사람이 천사도 되고 악마도 된다면 도대체 그 사람의 정체가 뭔지 궁금해집니다. 그런데 이럴 때는 알 수 없는 진짜 정체보다는 이 관점의 차이에 대해 의심해봐야 합니다. 관점의 차이가 너무 심해서 최소한의 공통분모조차 없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물을 보는 관점을 ‘프레임’이라고 한다면, 이런 경우에 프레임 자체가 왜곡되어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프레임이란 것은 사물을 보는 창, 즉 관점입니다. 그런데 이 프레임은 사물을 부분적으로 보게 만듭니다. 짜장 볶음밥을 전체적으로 봐야 하는데 짜장만 보게 하거나 계란 후라이만 보게 하거나 볶음밥만 보게 하죠. 그러면 사물에 대한 판단이 왜곡될 수 밖에 없습니다. 짜장을 싫어하는 사람은 짜장만 보니까 ‘짜장 볶음밥’에 과도하게 감정을 실어서 맛없는 음식이라는 비난을 퍼부을 수 있습니다. 볶음밥을 싫어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죠. 짜장과 볶음밥, 계란 후라이를 잘 섞어서 먹으면 정말 맛있을 수도 있는데 말이죠.

 

우리가 어떤 사물과 현상, 사람을 바라보는 프레임에 매우 큰 영향을 주는 것이 바로 이야기입니다. 같은 인물이라도 어떤 이야기의 틀로 보느냐에 따라 우리의 판단은 달라집니다. 가령 우리가 토드 필립스 감독의 <조커>(2019)를 관람했을 때와 팀 버튼 감독의 <배트맨>(1989)을 관람했을 때, 조커에 대한 판단은 천차만별일 것입니다. 영화 <조커>가 조커를 영웅에 가깝게 그려냈다면 <배트맨>은 조커를 악당으로 그리고 있기 때문이죠.

 

미국의 스토리 컨설턴트 로버트 맥키의 저서 <스토리>는 이야기를 구조에 따라 크게 네 가지로 분류하고 있는데요. 플롯이란 바로 이야기의 구조를 일컫습니다. 가장 고전적인 구조를 가진 아크플롯, 아크플롯을 미니멀하게 변형시킨 미니플롯, 고전적인 구조를 깨트리는 안티플롯, 그리고 위에 있는 세 가지 플롯과 달리 이야기의 처음과 끝이 다르지 않은, 즉 변화가 없는 논플롯까지 이렇게 4가지의 플롯이 있습니다.

 

 

아크플롯은 가장 고전적인 형태의 이야기 구조입니다. 인과성, 닫힌 결말, 연속적인 시간,외적 갈등, 단일 주인공, 일관된 사실성, 활동적인 주인공이 특징이죠. 인과성의 예를 들자면 ‘체홉의 총’이라는 법칙이 있습니다. 러시아의 극작가 체홉은 극 1막에 총이 등장하면 3막에서는 총이 발사된다고 말했습니다. 사건이 원인과 결과, 인과적인 규칙에 따라 이뤄진다는 것이죠.  유명한 소설가이자 <쇼생크탈출>을 비롯한 수많은 영화의 원작자이기도 한 스티븐 킹은 ‘체홉의 총’을 뒤집어 극 3막에서 총을 발사할 거면 1막에 반드시 총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둘 다 이야기에서 인과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죠.

 

아크플롯은 닫힌 결말이기 때문에 해피엔딩 아니면 새드엔딩 둘 중 하나로 끝납니다. 보통은 주인공이 미션을 달성하면서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되는 경우가 많죠. 또 연속적인 시간을 특징으로 합니다. 아크플롯에서 시간은 오직 과거, 현재, 미래의 방향으로 흘러가죠. 갈등은 양심의 갈등 같은 심리적, 내부적 갈등이 아니라 가족, 사회, 자연과 같은 외부 요인과 주인공이 갈등하는 외적 갈등의 양상을 띱니다. 자연재해와 맞서 싸우는 재난 영화는 뚜렷한 외적 갈등을 보여주죠. 아크플롯에서 주인공은 여러 명이 아니라 한명입니다. 주로 비범하고 특별한 사람들이 주인공인 경우가 많죠. 평범해 보이는 주인공이라도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자기도 모르는 특별한 능력과 재능을 발견하게 되죠.

 

일관된 사실성이란 이야기에서 한번 규칙으로 삼은 것은 일관성 있게 지켜져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하지만 로버트 맥키는 일관된 사실성이란 실제성과는 다르다고 말합니다. 실제성은 우리가 살아가는 실제 세계의 특성을 말하지만 영화의 사실성이란 은유적인 것이기 때문에 꼭 과학적이거나 실제 세계와 닮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죠. 예를 들어 시간여행을 한다는 설정은 영화에서 사실성을 가져야 하지만 현실에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실제성은 없는 것이죠. 가령 영화 <어바웃 타임>에서 주인공은 시간 여행을 할 수 있지만 오직 과거로만 갈 수 있고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실제 있었던 곳으로만 갈 수 있죠. 영화 중간에 갑자기 이 규칙은 온데간데없이 주인공이 미래로 간다면 관객들은 혼란에 빠질 겁니다. 그래서 아크플롯에서는 일관된 사실성이 중요합니다. 아크플롯에서 주인공은 활동적인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문제와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사건에 뛰어들고 무언가를 이루고 싶고 얻고 싶은 욕망을 능동적으로 발산합니다.

 

 

그런데 이 아크플롯은 할리우드 영화가 만들어낸 것이 아닙니다. 러시아의 민속학자인 블라디미르 프롭은 <민담 형태론>이란 책을 통해 다양한 민담의 구조를 연구합니다. 미국의 신화학자 조셉 캠벨 역시 세계 각지의 신화가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구조를 연구했는데요. 아크 플롯은 바로 그러한 민담과 신화의 구조에 토대를 두고 있습니다. 프롭은 민담의 구조를 순서대로 31가지 기능으로 정리하였습니다. 캠벨도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이란 저작에서 신화의 구조를 3막 17단계로 정리하였고 이를 발전시켜 <영웅의 여행>이라는 논문을 쓰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항목을 순서대로 잘 보시면 쉽게 감이 오실 겁니다. 일상세계, 모험으로 초대됨, 현자와의 만남, 동료/적 테스트, 최대의 시련, 귀환. 바로 이 민담과 신화의 구조는 우리가 영화와 만화 등을 통해 잘 아는 영웅 서사의 구조입니다. 한 인물이 성장하며 영웅으로 거듭나게 된 후 악당을 물리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이야기 말입니다.

 

캠벨의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의 17단계를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크게, 출발, 이니시에이션, 귀환의 3막 구조입니다. 이니시에이션은 주인공이 성장하기 위한 통과의례 같은 것을 말합니다.

 

할리우드의 영웅 신화로 불리는 전설적인 시리즈가 바로 <스타워즈>이죠. 그런데 조지 루카스 감독은 <스타워즈>시리즈를 만들 때 캠벨의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을 기초로 이야기를 설계하였습니다. <스타워즈>의 스토리는 고대의 신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이죠.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의 구조를 토대로 <스타워즈>오리지널 시리즈의 주인공 루크 스카이워커 이야기를 저 나름대로 간략히 분석해봤습니다. 설명에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다는 것 미리 말씀드립니다. 몇 가지만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스타워즈>에피소드 4편에서 주인공 루크는 모험으로의 소명을 깨닫고 자신의 집을 벗어나 모험을 떠나게 됩니다. 에피소드 5편에서 전설적인 제다이 기사 요다는 주인공 루크를 강도 높게 훈련시키고 루크는 이 초자연적 존재의 원조를 통해 제다이기사로 거듭납니다. 하지만 루크는 시련의 길을 걷게 됩니다. 그는 우주의 악당인 다스 베이더와 대결을 벌이다가 손 하나를 잃게 됩니다. 게다가 다스 베이더가 실은 자신의 아버지라는 충격적인 사실까지 알게 되죠. 6편에서 루크는 다스베이더와 다시 대결해서 승리하지만 황제 펠퍼틴의 공격으로 죽음의 위기에 처합니다. 이때 아버지 다스베이더가 아들 루크를 구합니다. 하지만 그는 황제의 공격으로 인해 죽음을 맞습니다. 죽음의 순간에 다스베이더는 아들과 화해하고 루크는 아버지와의 일체화를 이룹니다. 루크는 악당들과의 전투에서 승리합니다.

 

하지만 이후 세월이 훌쩍 흘렀지만 루크는 길게 보면 여전히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우주가 여전히 평화를 되찾고 있지 못한 것에 자신의 실수와 부족함이 크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며 은둔합니다. 그는 귀환을 거부합니다. 캠벨은 ‘귀로 경계의 통과’는 주인공이 건너편에서 죽고 그 후에 다시 이쪽 세계로 돌아오는 단계라고 말합니다. 루크는 악당이 된 벤 솔로와의 대결에서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세상을 구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됩니다. 루크는 포스의 영으로 변하기 전에 두 개의 지는 태양을 바라봅니다. 캠벨은 ‘두 세계의 스승’에 대해 인간이 자신의 한계, 개성, 희망, 공포, 삶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초월적인 것과 하나가 되는 단계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이야기 구조는 왜 만들어지게 된 것일까요? 단계적으로 생각해보면 이야기의 토대가 된 가장 근본적인 현실이 있을 겁니다. 그리고 이 현실에서 신화와 민담이 나오게 된 이유를 생각해보면 크게 두 가지가 있을 것 같습니다. 첫 번째는 나라를 세운 후 만들어진 건국신화처럼 정치적 필요성 때문에 신화나 민담이 만들어졌을 것입니다. 두 번째는 진실에 가깝지만, 직접적으로 얘기하면 위험한 것들, 금기시되는 것들이 신화와 민담의 형태로 숨겨져 구전되는 경우입니다. 이런 신화와 민담에서 아크플롯이 탄생했습니다. 그런데 이 단계는 일방향적인 것이 아니라 순환적입니다. 현실이 신화를 만들고, 신화가 이야기 구조를 만든다면, 이야기 구조가 다시 현실에 영향을 미치고 현실이 다시 새로운 신화를 만듭니다. 이 순환적 양상은 영화, 드라마, 소설 등 그야말로 이야기의 홍수라고 할 수 있는 현대의 대중문화에 의해 더욱 가속화됩니다. 세상을 신화적으로 바라보는 뿌리 깊은 사고의 바탕에는 아크 플롯의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이야기 구조가 현실에 영향을 줬던 예를 하나 살펴보겠습니다. 사회학자 필립스미스는 이집트의 대통령이었던 나세르와 이라크의 대통령이었던 사담 후세인을 예시로 이야기 구조가 현실에 어떻게 투영되는지를 연구했습니다. 1956년 나세르가 이집트에 있는 수에즈 운하의 국유화를 선언했을 때 영국과 프랑스,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공격합니다. 수에즈운하는 아프리카를 통하지 않고 바로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할 수 있는 중요한 시설이라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때 미국은 그러한 군사개입에 반대합니다. 반면 1990년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자 1991년 걸프전이 벌어집니다. 즉, 미국이 영국, 프랑스 등의 다국적군과 함께 이라크를 공격한 것입니다. 필립 스미스는 수에즈 운하 위기와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은 공통적으로, 석유 자원이 많은 중동의 지정학적 이해관계, 그와 관련된 위협이라는 점에서 상당히 비슷한 상황이었지만 미국 내 여론과 대외정책은 정반대였다고 말합니다.

 

필립 스미스는 그런 결과가 나오게 된 데는, 미디어와 공적영역에서 만들어낸 이야기 구조가 큰 영향을 주었다고 설명합니다. 미국의 미디어에서 이집트의 나세르는 시련을 극복하고 성장하여 조국의 근대화를 이룬 인물, 즉 영웅서사의 틀로 다뤄졌습니다. 하지만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은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인물이라는, 악당 서사의 틀로 다뤄진 것입니다. 물론 이야기의 틀은 어느 정도는 진실을 반영하고 있을 것입니다. 어쨌든 이야기 구조는 비슷한 현상을 판단하는데 커다란 영향을 줍니다.

 

우리는 실제로 한 인물의 일대기가 신화를 만들고 그것이 아크플롯의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지는 경우를 흔하게 봅니다. 혁신적인 기업가의 상징인 스티브 잡스의 일대기를 소재로 만들어진 영화 <잡스>도 한 인물이 시련을 겪으며 성장해 영웅적인 인간으로 거듭나는, 전형적인 아크플롯의 특성을 가진 작품이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일대기를 다룬 <변호인>이라는 영화도 역시 아크플롯의 특성을 가진 작품입니다. 아크플롯의 이야기가 하나의 신화를 형성하고 그것이 현실에 큰 영향을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기업인 시절 일대기를 소재로 한, <야망의 세월>이라는 드라마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기업인 이명박을 신화적이고 영웅적인 인물로 자리매김 시켰습니다. 몇 년 후 <신화는 없다>라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자서전이 나오기도 했죠. 드라마의 인기는 훗날 그가 대통령이 되는데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야기가 현실에 영향을 준다는 건 당연한 얘기지만 엄밀히 말하면 지금까지 현실에 강력한 영향을 준 이야기는 아크플롯의 이야기입니다. 앞서 살펴본 아크플롯의 특성들이 현실을 보는 우리의 관점을 어떻게 구조화 하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인과성은 근대과학의 바탕이 된 뉴턴의 물리학에 대응됩니다. 뉴턴의 물리학은 선형적인 특성, 그러니까 원인과 결과를 명확히 규명할 수 있는 과학적 체계를 갖고 있죠. 아크플롯은 현실을 영웅과 악당의 대결로 바라보게 합니다. 닫힌 결말이라 승리 아니면 패배밖에 없습니다. 이는 정치를 대결의 플롯으로 바라보게 하고 마치 정치의 궁극적 목적이 선거의 승리나 혁명의 승리, 적을 패배시키는데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아크플롯에서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로 흘러가며 주인공은 더욱 강하게 성장합니다. 이는 과거, 현재, 미래로 시간이 흐르면서 역사가 발전한다는 발전사관에 영향을 줬습니다. 진보의 맑스주의나 보수의 근대화론 모두 공통적으로 발전사관에 기반 해 있습니다. 외적 갈등은 대결의 플롯을 강화합니다. 갈등이란 적과의 갈등뿐이며 정치에서 갈등은 오직 진보 대 보수, 좌파 대 우파의 대결밖에 없다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아크플롯의 주인공은 한명입니다. 나머지는 조연이거나 악당이죠. 정치에서는 대결의 극점에 있는 인물들 진보 정치인과 보수 정치인 혹은 노동자와 자본가를 주인공이라고 생각하게 만들겁니다. 일관된 사실성은 세상은 어떤 규칙과 법칙대로 돌아간다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앞서 살펴본 선형적 세계관이죠. 그리고 활동적인 주인공이란 특성은 역시 앞서 살펴 본대로 사람은 시련을 극복하면서 성장하고 발전한다는 관점을 갖게 합니다.

 

물론 아크플롯은 현실을 객관적으로 반영하는 측면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전쟁과 혁명으로 들끓었던 근대 유럽을 설명할 때, 아크플롯을 사용하는 게 가장 효과적일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에 아크플롯만으로 세계를 설명하는 것은 현실을 너무 단순화 시키는 일이 됩니다.

 

이제 뉴턴의 물리학, 근대과학의 체계는 무너지고 복잡계 과학의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과거에는 원인과 결과의 법칙으로 세상을 설명하고 현실을 예측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지금은 세상이 카오스라서 우연히 일어나는 일들이나 예측 불가능한 경우가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전에는 시간이 과거, 현재, 미래로 흘러가며 세상이 발전하고 성장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했습니다. 자원은 거의 무한하다 여겼고 성장의 신화와 중산층의 신화가 만들어졌습니다.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통해서도 우리가 느끼는 거지만 무리한 발전에는 환경 파괴가 동반되며 이는 다시 우리에게 막대한 피해로 돌아옵니다. 무리한 발전은 또한 극심한 계층 불평등을 초래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무한한 성장이란 있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아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진보나 발전이라고 믿었던 것들이 사실은 정체와 퇴보일 수도 있는 겁니다. 그렇게 보면 시간이 반드시 과거, 현재, 미래로 흐르는 게 아니라 과거로 회귀하기도 하고 미래를 앞당길 수도 있을 것입니다.

 

 

갈등의 축도 과거에는 단순한 대결구도, 좌파/진보/노동 대 우파/보수/자본 같은 대결의 축을 갖고 있었다면 요즘 세상은 계층, 환경, 성정체성, 종교, 인종 등 다양한 갈등의 축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일대일 대결이나 영웅 대 악당의 대결 같은 단순한 서사로 세상을 읽을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자기 자신과의 대결, 내면적인 고뇌와 갈등이 심해진 세상이기 때문에 외부의 적이 없을 때도 많습니다. 팝 아트로 유명한 미국의 미술가 앤디워홀은 “미래에는 누구나 15분 동안은 유명해질 것이다.”라고 말했죠. 그의 말이 약간은 과장된 것일지라도 어쨌든 이제는 한 가지 가치만이 옳다고 믿는 거대한 영웅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다양한 분야에서 여러 가지 가치를 추구하는 수많은 주인공들이 존재하는 시대로 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을 한가한 얘기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 같습니다. 저는 그런 생각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에는 여전히 해결해야 될 큰 문제들이 많기에 여전히 영웅이 필요하고 물리쳐야 할 악당들도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아크플롯도 여전히 필요합니다. 또 아크플롯이라고 해서 반드시 대단한 영웅만이 주인공일 필요는 없습니다. 광주 민주화 운동의 역사 속에 숨어 있던, 영화 <택시 운전사>의 주인공 같은 평범한 영웅도 있습니다. 영화 <셀마>에서 인종차별 철폐를 외치며 행진했던 수많은 이름 모를 시민들이 없었다면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성취도 없었을 것입니다. 켄 로치 감독의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서 영국의 비인간적 복지제도에 저항했던 다니엘 블레이크 같은 작은 영웅도 있습니다. 이들은 초인적인 영웅은 아니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다하며 역사를 바꾸는데 일조했습니다.

 

미니플롯은 아크플롯의 영웅서사를 미니멀하게 변주합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에서 주인공은 과거 서부극의 멋진 총잡이가 아닌 아내 없이 아이들을 키우는, 늙고 쇠약한 남자입니다. 영화에서 주인공은 악당과 대결하긴 하지만 주된 대결은 악당과의 대결이 아니라 용기를 잃어버린 자기 자신과의 대결입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다크 나이트>는 선과 악이 명백하게 나뉜 히어로 무비가 아닙니다. 선과 악의 양극단에 있는 것 같은 배트맨과 조커도 모호한 면이 있지만 선악의 모호함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은 선악의 얼굴을 동시에 갖고 있는 하비 덴트입니다. 그는 선하게 보이는 인물이었으나 연인을 잃는 비극적인 사건 이후 악의 얼굴을 동시에 갖게 됩니다. <다크 나이트>는 누가 영웅이며 누가 악당인지 명확하게 구분하기 힘든 미니플롯을 통해, 선악 이분법으로 판단하기 힘든 현대사회의 복합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안제이 바이다 감독의 영화 <당통>은 프랑스 혁명을 이끌었던 혁명가 로베스피에르와 당통의 정치적 대결을 보여줍니다. 로베스피에르는 혁명을 더욱 강하게 밀어붙이고자 했던 급진파였고 당통은 상대적으로 온건파였죠. 둘은 극한으로 대립합니다. 당시 프랑스에는 상대 세력을 절멸시키는 공포정치가 횡행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당통은 로베스피에르 일파에 의해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집니다. 하지만 로베스피에르는 승리를 만끽하기는 커녕 커다란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그는 혁명이 잘못된 길로 들어섰다고 말합니다. 석달 후 로베스피에르 역시 죽음을 맞습니다. 그는 어렴풋이 자신의 죽음을 예감했을 지도 모릅니다. 반대진영을 완전히 제거하는 방향으로 진행된 혁명은 끝없는 복수전과 폭력으로 이어지며 프랑스 혁명 본래의 가치를 왜곡시킵니다.

 

 

안티플롯은 아크플롯의 영웅서사를 해체합니다. 멕시코의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21그램>은 안티플롯의 특성을 가진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우연히 일어난 비극적 사고로 여러 사람의 삶이 극심한 혼란에 빠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영화는 시간 순서대로 진행되지 않고 과거와 현재가 뒤죽박죽으로 섞여 전개됩니다. 이런 영화의 형식은 삶의 시간이 앞으로만 나아가는 게 아니라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희망과 절망은 무질서하게 뒤섞여 반복됩니다. 또한 주인공 한명이 아니라 여러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들은 부지불식간에 서로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주기 때문에 아크플롯에서처럼 주인공이 자신의 의지로 시련을 극복하고 성장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아크플롯에서는 권선징악의 서사가 많지만 이 영화는 동기가 선하다고 해도 그것이 나쁜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고 말합니다. 한 사람의 의지나 의도와는 다르게 삶은 전혀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우리는 한 인간을 선과 악의 단순한 잣대로 판단할 수 없고 혼란한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보편적 연민을 가져야 한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

 

앞서 살펴본 이야기 구조 삼각형을 정치적 이념에 적용해보면, 발전과 진보의 거대한 서사를 가진, 보수와 진보는 아크플롯에 해당할 것입니다. 미니플롯은 어떤 선명한 세계관 없이 다양한 이념 간의 균형과 내적 성찰을 강조하기에 중도에 가까울 것입니다. 안티플롯은 거대한 세계관 자체를 해체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이나 성장과 진보의 한계를 지적하는 생태주의에 해당할 것입니다. 그동안 한국 사회를 지배해온 아크 플롯은 다음과 같을 것입니다. 영웅은 대결에서 싸워 이겨 성장하고 집으로 귀환합니다. 여기서 집은 특정한 진영이나 지역, 연고 집단에 해당할 것입니다. 물론 그런 서사도 필요하지만 한 가지 이야기만 있는 세상은 재미가 없을 것입니다. 앞으로 한국 사회에 더욱 필요한 서사는 다음과 같을 것입니다. 시민은 갈등을 대화로 풀며 관계를 형성하고 사회에 속합니다. 사회는 그냥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그런 시민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아크플롯 뿐만 아니라 미니플롯, 안티플롯의 다양한 이야기들이 공존할 때 정치, 사회적으로 극심한 대립이 줄어들고 건강한 사회가 형성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