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미스 홀>과 켄 로치의 역사극
지난 번 글에서 켄 로치의 작품 세계에 깊숙이 깔려 있는 인문주의와 그 연원이라 할 작품 <케스>에 대해 이야기해봤습니다. 켄 로치의 인문주의는 그저 ‘인간이란 무엇인가’에서 맴도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위한 공동체와 정치에 대한 모색으로 맹렬히 나아갑니다. 그런 움직임이 가장 잘 드러나는 작품이 <지미스 홀>(2014) 아닌가 싶습니다.
2021/01/27 - [영화, 시민을 건축하다] - 켄 로치 <케스>, 한 인간을 위한 인문주의
켄 로치 <케스>, 한 인간을 위한 인문주의
사회계약과 인간의 자족성 사람은 자족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화분 하나를 들때도 손 하나가 더 필요해 도움을 요청할 때가 있죠. 작은 일상에서도, 홀로 할 수 없는 일이 꽤 많습니다. 홉스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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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욕적인 갑질, 고용주의 임금 체불, 불합리한 해고와 같은 현상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자본주의 세계 어디든 존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가지고 서로의 온기를 나누며 꿈꾸는 사람들도 어디든 있습니다. 켄 로치의 영화는 그렇게 인간의 보편적인 비극과 슬픔, 기쁨을 다룹니다. 때문에 영화가 다루는 내용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어도 작품을 감상하는데 무리가 없습니다. 켄 로치의 영화 형식은 투박하다 싶을 정도로 단순하기 떄문에 장 뤽 고다르 감독의 영화들처럼 (미장센과 몽타주에 결부된)영상 언어를 해석하기 위해 특별한 미학적 무장이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다만 <랜드 앤 프리덤>,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지미스 홀>같은 켄 로치의 역사극은 영화를 둘러싼 역사적 배경과 맥락을 알고 본다면 좋습니다. 모른다 해도 영화를 감상하는데 큰 지장은 없지만 배경지식이 있다면 인물의 감정선이나 사건의 의미를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겠지요. <지미스 홀>은 아일랜드인 지미 그랄튼(1886~1945)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지미 그랄튼은 1933년 조국 아일랜드로부터 추방당합니다. <지미스 홀>은 뉴욕에서 아일랜드로 귀향한 지미가 추방당하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줍니다.
아일랜드의 역사와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아일랜드는 800여년동안 영국의 식민지였습니다. 1916년 더블린에서 영국의 지배에 맞서는 부활절 봉기가 일어나는데, 이 봉기를 주도한 인물이 패트릭 피어스와 제임스 코널리였습니다. 패트릭 피어스가 이끈 아일랜드 의용군과 제임스 코널리가 이끈 아일랜드 시민군은 부활절 주간에 무장 투쟁에 나섰습니다. 1916년 부활절 봉기는 이후 아일랜드가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영국과 맞서 싸우는 투쟁의 기폭제가 됩니다.
그리고 1919년에서 1921년까지, 아일랜드가 영국에 맞서 투쟁한 독립전쟁은 휴전조약으로 귀결됩니다. 하지만 이 조약은 아일랜드의 완전한 독립을 보장하지 않았습니다. 북아일랜드는 영국의 영토로 남게되었으며 조약의 결과로 탄생한 아일랜드 자유국은 군사권과 외교권을 갖지 못하는, 영국의 자치령이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이들이 휴전 조약의 결과에 반발했고 아일랜드는 조약 찬성파와 반대파간의 내전에 휩싸이게 됩니다. 한 민족으로 고락을 같이했던 사람들이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는 비극이 일어나게 된 겁니다. 켄 로치의 영화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2006)은 아일랜드 독립전쟁과 내전이 일어나기 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두터운 우애로 생사를 같이했던 형제 테디와 데미안은 휴전 조약의 찬반에 따라 다른 진영에 속하게 되어 극렬히 대립하게 됩니다.
그런데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에서 이 대립은 단지 현실주의(조약찬성)와 이상주의(조약반대)의 전선으로 그려지지 않습니다. 영국과 타협하게 된 조약 찬성파는 영국계 지주와 자본가의 경제적 지배에 저항하는데 근본적인 한계를 가지게 됩니다. 조약 반대파 중에서는 데미안과 그의 동료들처럼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완전한 독립이란 단지 제국주의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라 가난한 소작농과 노동자가 지주와 자본가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들이 볼 때 조약에 찬성하는 것은 기존의 부조리한 계급적 질서를 그대로 둔 채 그저 국기의 색깔만 바꾸는 것에 불과했습니다.
'피어스-코널리 홀'의 의미
켄 로치는 <아이 위클리>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식민지가 독립을 원할 때마다 대두되는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1. 제국주의자들을 어떻게 축출하며, 2.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가?
부르주아 민족주의자들은 국기만 바꿔달고 현 상태를 유지하자고 한다. 반면 혁명가들은 재산법을 바꾸자고 주장한다.
이때는 언제나 중대한 기로다."
1916년 부활절 봉기의 주역이었던 패트릭 피어스와 제임스 코널리는 아일랜드의 독립을 위해 영국에 열렬히 맞서 싸웠지만 이념적 성향은 달랐습니다. 패트릭 피어스는 민족주의자였지만 제임스 코널리는 사회주의자였습니다. <보리 밭을 흔드는 바람>에는 제임스 코널리가 남긴 말이 데미안의 대사를 통해 전달됩니다. 제임스 코널리는 "우리가 내일 당장 영국군을 몰아 내고 더블린 성에 녹색기를 꽂는다 해도 사회주의 공화국을 조직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노력은 모두 헛될 뿐이며 영국은 지주와 자본가, 상권을 통해 계속 우리를 지배할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영국과의 투쟁이라는 대의로 민족주의자와 사회주의자는 힘을 합쳤지만 그 동맹은 독립의 방향에 따라 언제든 깨질 수 있는 불안한 것이었습니다. 1922년에 시작된 아일랜드 내전은 1923년 조약 찬성파의 승리로 마무리됩니다. <지미스홀>은 1932년 아일랜드의 리트림주를 배경으로 합니다. 그는 뉴욕에서 지내다가 1932년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10년전 지미는 고향 마을에 마을회관을 하나 짓습니다. 영화의 제목인 지미스홀은 지미가 지은 마을회관 이란 뜻이죠.
‘마을회관’의 이름은 바로 ‘피어스-코널리’ 홀입니다. 바로 패트릭 피어스와 제임스 코널리 두 독립운동가의 뜻을 기리는 의미를 담고 있죠. <지미스홀>의 주인공인 지미 그랄튼은 사회주의자였기 때문에 그는 당시 보수적인 가톨릭 국가였던 아일랜드에서 불편한 존재였습니다. 지미가 추방당한 이유역시 가난한 소작농들의 편에 섰던 그의 행보가 이념적으로 불온한 것으로 인식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미가 마을회관의 이름을 ‘피어스-코널리 홀’로 지은 것을 보면 사회주의자라는 규정만으로는 그의 진면목을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피어스-코널리 홀’ 이라는 이름에는 이념을 초월하여 조국이 하나의 공동체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그의 마음이 투영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지미의 작명에는 인문주의적 성찰이 담겨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영화 <지미스 홀>은 단순히 정치적 투쟁이나 이념적 대립에 관한 이야기를 넘어 삶과 공동체, 정치에 관한 풍성한 의미의 결들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다음 글에서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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